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한 달도 안 되어서 교지편집위원회에 들어왔다.
대학 생활의 절반을 편집실에서 보냈다.
여름호, 가을호, 겨울호, 새내기호, 봄호, 여름호, 가을호.
이번에 내는 겨울호까지 하면 수습-편집위원 경력을 다 합해서 8권의 교지를 내는 셈이다.
편집장이 되고 싶었다.
1학년 여름 끝물부터였던 것 같다.
과시욕?
명예욕?
허영심?
헌신?
아마 전부 다였으리라고 생각된다.
회계 일을 맡고 힘든 2학년 1학기를 보냈다.
여름호 교정 작업이 막바지에 들어갈 때쯤에는 힘들어서 울기까지 했다.
2학기 들어오면서부터 조금 나아지나 했는데, 생각지 못한 지뢰가 있었다.
내년까지 활동할 필진들의 실력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다.
심하게 말하면, 이런 필진들을 데리고 어떻게 책을 만드나 싶어 한숨이 나왔다.
'내년 편집장은 꽤 고생하겠구나…….'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정말 편집장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 회의를 느끼다가,
인턴을 하고 싶으면 연락하라는 선배의 글을 보았다.
하필 경제 전문지였다.
욕심은 났는데 연락하기가 부담스러웠다.
나의 경제 관련 지식은 중학교 3년 동안 배운 내용이 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편집장 자리와 인턴을 놓고 저울질하다가
"그 나이 때에는 눈 앞에 있는 게 가장 크게 보이는 법이야."라며,
저울질을 하는 것 자체가 바보 같은 짓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면,
사실 고민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는데.
이번 기회를 놓치면,
편집장을 하지 못할 때와 비교도 할 수 없게 후회할 것 같았다.
그래서 휴학을 하고 6개월 간 인턴을 하기로 했다.
아예 휴학을 하기로 결정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동시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교지편집위원회는, 말하자면 안락한 방공호였다.
내가 해야 할 일이 있고,
날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피곤하면 이불을 뒤집어쓰고 소파에 누워서 잠을 자면 되고,
심심하면 거실에 있는 컴퓨터 앞에서 빈둥거리면 되고,
배가 고프면 혼자서, 혹은 편집실에 있는 사람들과 뭔가를 먹으러 가면 된다.
이 곳에 있을 수 있다면 평생 학생으로 지내도 괜찮겠다 싶을 정도로 편안한 곳.
내가 사랑한 것은 방공호로써의 교지편집위원회였다.
교지편집위원회 자체를 사랑했기 때문에 편집장이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나만의 방공호'를 지키고 싶었을 뿐이었다.
정말 아쉽지만, 이제는 학교라는 세계를 깨뜨릴 때가 된 것 같다.
방공호에서 탈출해서, 나를 좋아하지만은 않는 세상과 마주해야 한다.






최근 덧글